홍 보

의로운 죽음, 까탈스러운 대접, 함 죽어 보시요!

focus119 2006. 7. 19. 18:49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 上. 불합리한 公傷·순직자 처우

경향신문 2006년 07월 18일

 

‘위험직무 순직공무원 특례법’이 발효됐지만 불합리한 구석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 유가족들은 두번 눈물을 삼키고 있다.


이들은 연금과 보상금을 올려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아는 정부에 대해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보 일어나” 애절한 눈빛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2년째 식물인간으로 투병중인 장용석씨(왼쪽)를 부인 황춘금씨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장씨는 ‘위험직무 순직공무원 특례법’ 이 발효된 지난 3월 24일 면직처리돼 경찰복을 벗어야 했다. <박민규 기자> 


◇3개월마다 병원 전전해야=2004년 6월 폭력사건을 조사하다 피의자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전직 경찰’ 장용석씨(36).


장씨는 지난 6월초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원해야 했다. 병원에서 “원래 3개월 이상 입원시켜주지 않지만 경찰유공자라 6개월씩 입원시켜준 것이다. 더는 안되니 빨리 나가달라”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다른 병원을 알아본 끝에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3개월 이상 입원시켜줄 수 없으니 알고나 있으라”고 말했다.


장씨의 부인 황춘금씨(32)는 “유공자를 위해 설립된 병원조차 이럴줄 몰랐다”면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를 데리고 3개월마다 병원을 전전하란 말이냐”며 허탈해 했다. 그는 “보상은 차치하고 마음놓고 치료받을 병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분해 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거지 기간이 지났다고 억지로 내쫓는 건 아닌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의 이야기는 달랐다. 한 관계자는 “입원뒤 일정기간이 지나면 공단에서 지급하는 의료입원비가 삭감되기 때문에 수입감소를 우려한 병원들이 종종 그런 장난을 친다”며 “하지만 보훈병원까지 그렇다는 건 기본적인 도덕성 문제”라고 말했다.


◇치료비 자비부담도 많아=공상자들의 치료비는 정부가 전액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치료비가 100% 전액 지원되는 것은 아니다.


황씨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비는 전액 지원받을 수 있지만
무통주사, 특진료, 각종 비품비용 등은 모두 환자 본인 부담”이라고 밝혔다.


화재진압 도중 부상을 당했던 일선소방관들은 정부부담 치료비는 절반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소방관은 “허리를 다쳐 공상으로 처리돼 치료를 받았지만 총 치료비 5백만원 중 정부가 지급한 돈은 2백만원이 채 안된다”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부담했다”고 말했다. 일부 소방관들은 1천만원이 들어간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외에는 보상없어=산업재해성 사망과 부상에는 보상이 전혀 안되고 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진압후 투병하다 2004년 사망한 김재국 소방장의 부인 하정순씨는 “그날 불길을 잡은 뒤 집으로 전화해 ‘감기에 걸렸다. 좀 독한 감기약을 사놓으라’고 했지만 이후 며칠간 사고조사로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했다”며 “이후 한양대 병원에서 임파선 결핵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고통으로 휴직한 뒤 병원비를 대기 위해 공상자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공단측은 “사고현장인 인천동부(화재가 발생한 인현동이 인천동부쪽)에 노숙자가 많으니 그쪽에서 옮은 거지 직무와 연관이 없다”고 통보해왔다.


이후 복직과 휴직을 반복한 김소방장은 수십년 입었던 소방복을 벗고 병상에서 숨졌다. 하씨는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지 않고 질병에 걸린 경우는 정말 아무소리 못한다”며 “당시 의사도 직업연관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골치아프니까 진단서를 떼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씨는 수선집을 운영해 버는 1백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취업은 알아서 해라=장용석 경장은 지난 3월24일 면직처분당했다.


이날은 ‘위험직무~특례법’이 발효되는 날이었다. 부인 황씨는 면직 결정 재심을 청구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신을 경찰로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국가유공자’로 치료비와 연금을 받으면서 경찰채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입방아에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황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경찰채용 요구가 돈을 더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황씨는 현재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굳이 생활비를 벌려면 경찰에 채용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황씨는 “평소 자신의 생일보다 경찰채용일을 더 챙길 정도로 경찰직을 천직으로 알고 일했는데 이렇게 내팽개쳐지는 게 억울해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가족들은 취업이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라며 강제적 법조항으로 취업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 개념 도입해야=지난 4월 사망한 허재경 소방장(43)은 특례법이 발효된 뒤 처음으로 법적용을 받게 된 경우다. 친형 허모씨(45)는 그러나 동생의 죽음 외에 연금과 보상금 등 특례법 적용과 관련한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소방서 동료들과 간부들이 걱정스러운 말과 대충의 처리과정을 설명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특례법이 개정됐는지 그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소방서 동료들이 그나마 알려주어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출동이라는 이유로 순직처리에서 탈락한 오종수 소방관 부인 양모씨 역시 “특례법이 뭔지 모른다. 모든 걸 소방서에서 해주는대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프랑스처럼 정부의 담당관이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각종 지원책을 브리핑해주는 선진국과는 시작부터가 다른 셈이다.


취재결과 유족자들 대부분은 경찰서나 소방서에서 처리해 주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순직자·유공자 지정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기획취재부=배병문·전병역·김동은기자〉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 유족들 ‘생계와의 전쟁’

경향신문 2006년 07월 18일

 

순직공무원의 유족들은 가장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생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김재국 소방장의 부인 하정순씨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옷수선집에서 옷가지를 다림질하고 있다. <인천 강윤중 기자> 


대구에 사는 조순경씨(38)는 최근까지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녔다. 지난해 10월 남편 최희대 소방교가 상가화재 진압도중 사망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조씨 가족의 한달수입은 유공자연금 93만원이 전부. 중1 아들과 유치원생 딸의 뒷바라지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시어머니 중풍증세가 심해져 의료비 역시 만만찮게 들어간다.


그동안 모아둔 돈과 남편의 퇴직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 바닥이 날지 두렵다. 조씨는 보훈처에 이어 남편이 근무했던 소방서를 찾아 사정을 얘기했지만 ‘까탈스럽게 군다’는 핀잔만 들었다.


최근 조씨는 정말 어렵사리 소방서내 사무보조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정부는 연금·보상금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하겠지만 유가족들에겐 생계유지를 위한 취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구용모 소방위의 부인 유순금씨(49)는 인천에서 요구르트 배달일을 한다. 시어머니 용돈이나 드리려고 10년 전 시작했던 일이 이제 생계수단이 돼버렸다.


보상금 6천만원과 유공자연금·유족연금을 합쳐 매달 1백60만원을 받고 있다. 유씨는 “요구르트 배달해서 얼마나 벌겠나. 팔순 시어머니까지 가족이 4명이다. 경제적으로 최악은 아니지만 결코 좋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공자 혜택 중 쓸 만한 건 학비면제뿐”이라며 “비행기 탑승시 1명에게 10% 할인해주는데 우리 같은 서민이 비행기를 얼마나 타겠나. 그런데 버스나 기차는 할인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요구르트 배달도 개인사업이라고 한달 의료보험료만 13만원이 나온다”며 “보상금 높이고 연금 주면 뭐하나. 이런 데서 다시 거둬가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재국 소방장의 부인 하정순씨는 가시밭길 인생을 살고 있다. 화재진압 후 감기증세를 보였던 김소방장은 2004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공상처리가 되지 않아 정부로부터 받은 것은 퇴직금이 전부였다.


퇴직금도 남편 항암치료비로 다 들어가고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현재 2평가량의 수선집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서 겨우 1백만원을 번다. 그래도 그는 “힘들지만 훌륭한 남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소방관 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며 말문을 닫았다.


▷ ‘순직공무원 보상 특별법’ 어떻게 적용되나


‘위험직무 관련 순직공무원 보상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 3월24일부터 발효되면서 순직자들에 대한 보상이 강화됐다.


허재경 소방장은 특례법이 신설된 이후 처음 적용받은 경우다. 순직처리된 허소방장은 유족연금 70여만원(20년차 미만으로 보수월액의 55%적용)이 주어진다.


과거에는 14년3개월 근무한 경우 일시불 퇴직금이 적용됐다. 보상금은 공무원평균보수월액(2백6만원적용)의 60개월치를 적용해 1억2천3백60만원을 지급받는다. 과거에는 36개월치였다.


또 허소방장은 국가보훈처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유공자 연금 74만원도 추가된다. 이외에 자녀양육비 16만5천원, 부인 부과연금 3만원, 생활조정수당이 8만~19만원까지 차등지급된다.


1억2천만원을 은행이자로 따져 환산하면 매월 2백30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게 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2001년 순직한 구용모 소방위(22년 근무)유가족은 일시보상금 6천만원에 유공자연금 93만원, 유족연금 70만원을 받고 있다.


〈기획취재부〉 

 

故 심재호경위 부인의 ‘마르지않는 눈물’

2006년 07월 18일

 

2004년 8월1일. 강력범 검거에 나섰던 심재호 경위는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쓰러졌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뒤로한 채 심경위는 싸늘한 주검으로 사라졌다.


결코 길지 않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칭 ‘이학만 사건’이라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때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순직’이라는 빛바랜 훈장만을 던져준 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의 죽음.


하지만 남편과 아빠가 떠난 덩그런 빈자리를 지키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는’ 여전한 슬픔으로 남아있다.


사회가 잊어버리고,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그들은 생계와 슬픔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6월 현충원 심경위의 묘지 앞에서 아내 황옥주씨는 말했다.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게 두렵고 무섭다”고. 의로운 죽음 뒤에 남은 아픔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황옥주씨(35)는 남편의 목소리를 또렷이 기억한다. 휴일인데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출근한 뒤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는 남편에게 투정도 부릴 겸 걸었던 전화였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남편은 “바쁘다”는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2004년 8월1일 무더운 여름 주말 저녁의 일이다.


그때 남편 심재호 경위와 동료 이재현 경장은 강도용의자를 붙잡기 위해 서울 신촌의 한 커피숍에 잠복 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용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었다.


피를 흘리며 잡으려 했지만 용의자는 도망쳤고 모두 현장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 도망친 용의자 ‘이학만’은 1주일 후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인질극을 벌인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고 심재호 경위의 부인 황옥주씨와 장남 우연군(6)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고인의 묘비를 찾아 함께 절을 올리고 있다. 황씨는 ‘아빠가 보고 싶다’는 우연군의 성화에 한달에 두번씩 현충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대전/김대진기자 


황씨가 ‘영안실에서 대통령 빼고는 다 만나봤다’고 말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관심은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뚝 끊겼고 황씨는 4살과 8개월 된 두 아이와 함께 이전보다 몇 배나 힘든 현실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황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사였다. 큰아이가 밤에 잠을 못이루고 경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사를 했더니 주변에서 ‘남편 죽어서 받은 돈으로 새집을 샀다’고 손가락질들 하더군요.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그렇지만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오히려 자랑스러워 해야 할 죽음인데….”


다행히 황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서울시내 한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월급은 1백만원이 조금 넘는다.


국가보훈처에서 매달 받는 유공자 연금을 합치면 세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다. 황씨는 “주변에서는 경찰로 특채된 줄 알고 ‘월급 많이 받겠다’고들 한다”며 “순직공무원의 가족들이 대단한 대접을 받으며 사는 줄 아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직장에 나간 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 저렴한 구립 어린이집에 맡겨보려고 했지만 구청직원들에게 1순위가 주어져 들어갈 수 없었다.


유공자 가족이란 칭호는 이렇게 일상생활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씨는 “결국 친정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애들을 돌보고 있지만 친정에 혼자 남아계신 아버지가 또 문제”라며 “남편의 죽음 이후 주변 가족들 모두 차례로 자신들의 삶이 왜곡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아직 남편이 없는 현실이 익숙지 않다. “얼마전 3살이 된 작은애는 지금도 비행기 타고 하늘나라에 가면 아빠를 만날 수 있다고 믿어요. 이 아이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이 아이들이 자라는 도중에 어떤 일이 닥칠지, 애 아빠 없이 저 혼자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늘 두려워요. 나중에 애들 아빠한테 미안하지 않게 잘 키워야 하는데….”


2주 후면 심경위의 2주기다. 하지만 지금 심경위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난해 현충일만 해도 인터넷에 남편을 추모하는 글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하나도 없더군요. 이대로 남편과 우리 가족은 잊혀지는 걸까요.


지금까지 버텨온 2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남편 없이 살아가야 하는데.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게 무섭고 막막합니다.”


〈기획취재부〉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 中. 민간인 의사상자, 사건 그 뒤

경향신문 2006년 07월 19일

 

부산 영도에 사는 오덕진씨(59)는 지난 4월25일 새벽 2시쯤 집 근처 청학시장을 지나다 통닭집 셔터문을 따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다가가 ‘아저씨 뭐 합니까’라고 물었다.


순간 도둑은 흉기를 휘둘렀고 오씨는 머리에 15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달려온 택시기사와 경찰의 도움으로 범인은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지 않았던 ‘의로운 사람’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제도적 미비로 고통을 겪고 있다.

 

 

“엄마 왜 안와?” 고(故) 설동월·이진숙씨의 유일한 혈육인 승환군(4)이 할아버지 동수씨의 목마를 탄 채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고 있다. 이제 엄마·아빠를 찾을 나이인 승환군은 놀이방에 마중 나온 할머니에게 “왜 엄마는 안 와?”라며 떼를 쓰곤 한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박민규기자 


◇의로운 행동, 때늦은 후회=의로운 일에 뛰어들었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씨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왼손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3급 지체장애인.


그날도 그는 도둑이 휘두른 흉기에 맞서 왼손으로 도둑을 끈질기게 잡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후회막급이다. 그는 “‘의사상자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며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는데도 이렇게밖에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받은 것은 경찰이 준 포상금 50만원이 전부. 그것마저 치료비(47만원)로 다 들어갔다. 정밀진단은 커녕 응급치료만 할 수밖에 없었으니 후유증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실제 그는 “머리가 자꾸 흔들리고 차를 타면 구역질도 나오고. 약은 먹고 있지만 어지럽다”고 말했다. 손자 2명을 맡아 키우고 있는 그는 아들이 2명 있어 기초생활대상자도 되지 못했다. 산재연금 5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택시기사 이규씨 역시 후회하고 있다. 그는 택시강도를 뒤쫓는 경찰을 보고 강도가 탄 차량을 앞에서 막아섰다. 꽤 큰 충돌이 있었고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보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영구장애 등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폐차처분한 차량은 온존히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 자차보험 6백만원과 자신의 돈 1천만원을 들여 새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는 그나마 병원장이 무료로 해줘 덜었다. 이규씨는 복지부에서 재산상의 손실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는데도 일단 의상자로 신청을 한 상태다.


그는 “안 되는 줄은 알지만 국회에서 법개정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들어 일단 신청은 해놓았다”면서 “서운하지만 어떡하느냐.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니까. 주변에서는 이제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고 씁쓸해했다.


◇같은 행동, 엇갈린 판정=1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설동월·이진숙씨 부부. 고속도로에서 사고차량의 부상자들을 수습하던 중 뒤에서 달려든 차량에 모두 숨졌다.


당시 사회는 이들의 행동을 높이 칭송했고 정부 역시 이들의 의사자 선정을 장담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남편 설씨만 의사자로 선정됐을 뿐 부인 이씨는 의사자에서 탈락했다.

 

이씨의 언니는 “왜 진숙이는 의사자로 선정이 되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며 “명확한 기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꼬치꼬치 묻기도 어려워 가슴으로만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설동월씨 부부 추모회원들은 “복지부의 판정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씨의 선정탈락에 대해 의아해했다. 현재 이씨의 친인척들은 행정소송을 준비중이다.

 

◇생계걱정, 의사자신청에 이중고=남은 자들은 생계의 어려움은 물론 의사자 신청을 위한 준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의사자 선정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 동료의 아이를 구하려다 추락사한 서광율씨 부인 김정미씨(37)는 그는 “뭘 해야 할지 두렵다. 동사무소에 얘기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은 없다. 다시 와보라고 하는데 솔직히 용기가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5·7세 형제 중 큰아이를 경제적 부담으로 일찍 학교에 들여보냈다. 회사에서는 퇴직금 1천만원만 나왔다. 그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서 “첫 제사가 돌아와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그때 생각이 난다”고 덧붙였다. 특히 아이들이 아빠의 죽음을 목격하는 바람에 충격을 감싸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정오빠 김규석씨는 “사고현장에 어린 조카들만 있었고 제3의 목격자가 없어 의사자 신청에 어려움이 있다”며 “의사자 선정이 까다롭다고 들어 사례 모으고 여러 사람 얘기 들으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경험자들이 공무원 믿지 말고 유가족이 필요하다 싶은 자료를 충분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라고 하더라”라며 “솔직히 의로운 일 하고 인정받으려 이리뛰고 저리뛰어야 하는 유가족의 심정을 정부는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법원의 힘빌리기 속출=여관청소부 권오남씨는 근무하던 여관에서 불이 나자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며 투숙객을 대피시키다 화마에 희생당했다. 그러나 그는 복지부로부터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청소부도 여관의 관리자에 속하므로 직무 외 구제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기각이유였다. 시동생 이록상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람을 살리고도 이렇게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길이 멀고 험난할 줄 상상도 못했다”며 “남을 도우려 했던 형수의 뜻이 무시당한다는 것이 가장 가슴아팠다”고 말했다.


권씨 유족은 심의위원회에서 기각당한 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서도 거푸 패소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의사를 인정받았다. 이씨는 “의로운 행동을 하고도 증인진술 받으러 쫓아다니고 생존자들을 설득하며 고생한 생각을 하면 어떤 때는 형수가 미워지기도 하더라”라고 밝혔다.


〈기획취재부=배병문·전병역·김동은기자〉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 고속도 구조 부부 ‘의사인정’ 논란

경향신문 2006년 07월 19일

 

-義死다: “추돌 막으려 수신호”-

 

 

설동월씨 고모부 권희철씨=남편이 구조할 때 당연히 한 사람은 뒤에서 오는 차를 의식해 수신호를 해주는 것 아닌가. 내가 확인한 경찰조서에는 남편은 구조활동을 했고, 부인은 수신호했다고 나와 있다. 구제행위가 약하냐, 중대하냐로 의사자 선정이 달라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진우 변호사=아내 입장에서 남편이 구조활동을 하는데 구경만 했을 가능성은 적다. 미끄러운 눈길 위에서 후속사고를 막기 위해서 아기를 안고 한손으로 옷가지를 든 채 서행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뒤에서 온 가해차량은 커브길에서 시속 90㎞로 달려 이씨 신호를 봤더라도 늦었다. 구조를 받은 차량 운전자는 물론 가해차량 운전자와 부인도 우호적 진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설씨 추모홈페이지 회원 최모씨=어쨌든 두분이 남을 도운 한 사건으로 사망했다. 만에 하나 수신호를 했는지 확인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아이를 바깥에서 안고 봐준 것부터 적극적이다.


설씨가 구조하라고 부인이 허락한 것만으로 동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부인이 극력 반대했으면 설씨가 구조행위를 할 수 있었겠는가. 세금은 이런 분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본다. 돈이 아까워 한 집안에 한명만 인정해야 한다는 계산이 있었다면 더 문제다.

 

-아니다 : “그냥 길에 서있었다”-

 

 

심의위원 홍순기 변호사=시간이 지나 자세한 것은 기억하기 어렵다. 다만 남편 설동월씨는 구조작업하다 사망했고 부인 이진숙씨는 차에 나와 서 있었던 것 같다. 설씨는 구체적으로 구제행위가 있었지만 이씨는 구조작업이 없었다고 판단된다. 만약 이씨도 구조한 게 있다면 증거보완해 행정소송할 수 있다. 당시 목격자 진술과 조서를 토대로 결론내린 것이다.


사건을 처리한 당시 전주중부경찰서 임영만씨=이씨는 정황상 교통관리했을 확률은 적다. 자신들 차 뒤에 아이를 안고 있다가 승용차에 치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끌어안고 주저앉았을 것 같다.


복지부 법무지원팀 김성태 사무관=초동수사 기록을 가지고 의사상자 심의위원회에서 분석, 판정했다. 가족이 언론보도 가지고 서류를 제출했는데 아무래도 언론은 피해자측에 치우친 기사를 쓰지 않았겠나. 당시 기록을 보면 이씨는 구조행위로 볼 만한 행위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날씨가 춥고 해 팔짱끼고 움츠리고 있었을 것이다.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 선정·보상 어떻게

경향신문 2006년 07월 19일

 

의사상자에게 우리 사회가 주는 보답과 선정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과연 어떤 선정절차를 거치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탈락하고 법에 호소하는 것일까.


▲보상=보상금은 의사자는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액’의 240배로 정해져 있다. 지난해 1억6천9백만원에서 올해는 약간 올라 1억7천8백만원이 일시불로 유가족에게 전해진다. 이외에 의료보험 1종수급자, 수업료와 취학비 등 기타 혜택이 주어진다.


의상자는 장애정도에 따라 1급에서 6급까지 차등지급된다. 1급은 1억7천8백만원이고 2급부터는 12% 차등지급된다. 6급은 7천1백만원이다. 기타 혜택은 의사자의 경우와 유사하다. 이와 함께 의사상자 유족에게는 취업을 알선해주도록 돼 있지만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불인정 속출하는가=무엇보다 의사상자의 구제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수백가지 상황에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정한 직무연관성, 타인의 범위, 구제행위의 적극성을 대입하고 이를 위원들이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슷한 사례도 심의위원들의 판단에 따라 다른 판정이 나올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여기에 ‘사회적 귀감’ 여부까지 더해지면 선정의 그물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의상자들은 영구장애가 아니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급에서 6급까지 영구장애가 발생하지 않는 부상은 치료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한편 지난해 총 52건의 신청 중 13건이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이중 4건이 행정소송을 냈고 복지부는 2건에서 패소했고 1건에서 승소했다. 또 현재 진행중인 1건은 1심에서 복지부가 패소했다. 또 올 5월에 가진 심의에서는 19건 중 4건이 불인정을 받아 1건의 행정소송이 진행중이다.


▲기초조사 부실=심의위원들에게 제공되는 기본판단자료는 경찰의 조사이다. 하지만 이 조사는 사건개요만을 기술해 놓아 의사상자 판단기준에는 상당히 미흡하다.


김욱 복지부주무관은 “경찰조사는 범죄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구제행위 부분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논란의 출발은 여기서 일어난다.


조서만 보면 원인 등 파악이 제대로 안된다”며 “경찰이 이런 부분까지 감안해 세밀하게 작성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변호사도 “경찰은 변사냐 타살이냐를 먼저 따진다”며 “구체적인 구조경위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개정은 하세월=이런 이유로 의사상자 예우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예산확보와 복지부 내 부서간, 다른 부처와의 의견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 작업이 초안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초안은 의상자 장애등급을 현행 6급에서 7급으로 확대해 장애가 아닌 부상에 대해서도 보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7급은 1급 지급액의 20% 정도가 예상된다. 또 물질적 피해에 대해서도 특별보상금제를 신설할 계획이다.


〈기획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