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방

나의 수습시절 최동철 소방관

focus119 2007. 7. 12. 01:00
 

소방관/최동철 부산 기장파출소(나의 수습시절)

 

[경향신문]1996-12-17 28면 1799자 생활·여성 기획,연재

 

치솟는 불길 시커먼 연기. 팀웍은 생명이다. 소방호스를 놓쳐 동료들을 위태롭게 했던 악몽같은 경험. 불이 무섭다. 그렇지만 오늘도 불과의 전쟁에 나선다.내가 소방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94년 5월 21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출근 첫날부터 화재진압 작전에 투입됐다.


「에엥∼」. 사이렌이 울리자 7명의 소방대원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물탱크차, 펌프차, 구급차에 올라탔다. 쏜살같이 달려 현장에 도착하니 하늘높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대형 화재인 것을 직감했다.


『최동철! 빨리 물호스를 깔아』. 선배들이 다급하게 이것저것 장비를 가져오라고 내게 소리쳤지만 귓가에서만 맴돌 뿐 아무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예? 예?』. 막상 불을 대하니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화재 진압복인 방수복으로 갈아 입고 방수화, 방수모, 공기호흡기, 장갑을 착용하긴 했지만 무게에 짓눌려 한발짝도 옮길 수가 없었다.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키 1m77에 78㎏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던 나는 첫날 불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햇병아리 소방관이었던 나는 훈련과 교육에 더욱 열성을 다했다. 고된 훈련과정을 거치며 하루 이틀 화재현장에 출동하다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남들보다 앞장서서 물호스를 잡기도 했다. 소방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상황실로부터 부산 금사동 소재 고무공장에 화재가 났으니 즉각 출동하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동철아, 내 뒤에 바싹 붙어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화재진압이 시작됐다. 소방관은 불이 난 지점에서 1m도 채 안 떨어진 곳에서 불길을 잡는다. 그때 나의 주임무는 장비조달과 방수장을 돕는 방수보의 역할이었다. 방수장은 관창(물호스의 맨 앞부분)을 잡고 최전방에서 불길을 잡는다. 하지만 워낙 물의 압력이 센지라 건장한 남성이라도 10분 이상 버티고 있질 못한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며 1시간 정도 불길을 잡았을까. 어느정도 불길이 멎는 듯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옆쪽에서 불길이 확하고 번지기 시작했다. 선배(방수장)가 자신이 들고 있던 관창을 엉겹결에 내 손에 쥐어줬다. 『약해진 불은 네가 맡아라』.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그만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내 손에서 빠져나간 관창이 살인무기로 돌변하여 이리저리 용틀임하며 강한 물줄기를 뿜어냈다. 동료는 물론 현장 전체가 위험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화염 속에서의 화재진압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팀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실수하는 날엔 전체가 목숨을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어쩌지를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데 노련한 선배 한 분이 몸을 날려 관창을 잡았다. 다행히 그날 상황은 별탈없이 종료됐다.


되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여러 광경이 떠올랐다. 「죽은 사람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 장기가 터져 나와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사람. 재산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채 망연자실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노인들…」. 불이 무서웠다. 그만 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소주나 한잔하지』. 퇴근무렵 사표를 내려는데 한 선배가 어깨를 툭 쳤다. 한두잔 소주잔을 비우는 사이 우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는 거야』 『야 임마, 난 20년 됐는데도 불이 무섭다』. 어깨를 도닥거려 주는 선배가 없었다면 지금 내가 화재, 구조, 구급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소방관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날의 교훈과 경험을 거울삼아 오늘도 불과의 전쟁에 나선다.<최동철 부산 기장파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