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교육 참사' 목격 어린이 `불면ㆍ우울ㆍ무기력' 호소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운동장에 사람 3명이 떨어져 있었어요. 처음엔 마네킹인 줄 알았는데, 빨간 액체가…너무 끔찍했어요"
`소방훈련 추락사고'가 발생한 서울 원묵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A(12)양은 19일 오후 교내 양호실에서 진행된 개별 심리상담에서 참혹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받은 A양은 "사고 후 `우리 엄마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게 너무 미안해요. 그 분들은 우리를 도와주러 오셨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그런 일을 당하셔서 자꾸 죄책감이 들어요"라며 흐느꼈다.
A양은 "책을 폈다가도 엄마 없이 살 애들을 생각하면 불쌍해서 눈물이 자꾸 나요. 돌아가신 분들이 결국 잊혀진다는게 안타깝고 슬퍼요"라며 "거울을 볼 때나, 목욕을 할 때나 뒤에 누가 있는 것만 같고, 깜깜한데는 못가겠어요"라고 털어놨다.
A양의 어머니는 딸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날부터 애가 눈물샘이 터졌는지 계속 울기만 하네요. 애가 다른 생각을 하도록 돕고 싶은데 안되더라구요"라며 "저도 바스켓을 탈 뻔했는데 그 때 생각만 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차례로 들어온 4학년 B(10)양의 어머니는 상담의에게 "아이가 볼 일을 볼 때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방에 혼자있는 것도 싫어하고, 손톱을 자꾸 뜯고 그래요. 불안해 하길래 사고가 난 날부터 아이들 방에서 네 식구가 다 같이 잤어요"라고 말했다.
B양은 고개를 숙인 채 의자 끝에 걸터앉아 `무엇을 보았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사람이 대자로 뻗어있는 모습이요"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망설이듯 답했고 `지금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엔 "멍해요. 아무 생각이 안 떠올라요"라며 무기력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4학년 C(10)양도 "괜찮은 것 같다가도 가끔 울컥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 엄마도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나'는 생각도 들구요. 잠 자다가도 중간에 자꾸 깨서 피곤해요"라고 호소했다.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했거나 전해들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실을 찾은 D(10)양의 어머니는 "숨진 학부모들과 원래 잘 알고 지냈어요. 사고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랬는지 말도 못해요"라며 "딸 아이가 밥도 안 먹고, 잠자리에 들어도 계속 뒤척거리는데 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4학년 A(10)군의 어머니는 "애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데 불쑥불쑥 `아줌마 떨어질 때 얼굴을 봤어요'라는 등 한 마디씩 할 때마다 깜짝 놀라요. 애한테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겼을까봐 불안하고 걱정되네요"라고 말했다.
반면 충격에서 벗어난듯 사고 원인과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학생도 있었다.
6학년 최모(12)양과 이모(12)양은 "어떻게 소방체험에서 이런 엉터리 같은 사고가 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안전점검을 안 한 게 잘못이죠"라며 "교장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는데 계속 일하시면 안되나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5학년 윤모(11)군은 "처음엔 조금 놀랐는데 하루 지나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저보단 친척 여동생이 자꾸 나쁜 꿈을 꿔서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상담을 맡은 이상은 학교보건진흥원 건강증진 팀장(정신과 전문의)은 "오늘 학생 30여명을 상담했는데 사망자와 친밀도, 성격에 따라 각각 충격을 받은 정도와 증상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증상으로 ▲ 사고상황을 자꾸 떠올리는 것 ▲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잠을 못자고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 ▲ 정신이 멍해지는 것 등을 꼽았으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고 전에 처해있던 개인별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이번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최소 2주일, 길게는 반 년이 걸린다. 대다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극복하겠지만 일부는 정기적인 정신과 상담 및 약물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이 혼자 있기 싫어하고,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데 이때는 곁에 있어주는게 좋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원을 가거나 숙제를 하는 등 평소 생활을 유지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라며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침체된 학교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당국은 월요일인 21일 4학년 3반 학생 집단상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심리테스트를 실시해 전문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을 선별, 정신과 의사와 연계해 주고 3∼4교시에는 미술 치료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오전 학교 현관에 차려진 분향소에는 임시 휴교를 했음에도 학부모와 학생 등 수십여 명이 찾아와 애도의 뜻을 나타냈으며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 찬반 조사 후 운동장에 추모비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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